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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기준

by Bookbybooks 2022.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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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일 년 내내 선수촌과 같은 곳에 갇혀 하루 몇 차례 훈련을 받고 고통 속에 몸소 몸을 단련시키는 운동선수들을 볼 때면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나오곤 한다.

 

"그 정도까지 할 필요가 있나? 저렇게까지 지독하게 한다고? 아마 나였으면 절대 그렇게는 못했을 거야."

 

나이가 들고 나 역시 노동으로 인한 몸과 마음의 불편함에 비례해 지갑이 두터워지는 삶을 살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높은 기준과 직업인으로서의 처절한 몸부림이 와닿지 않았다.

 

세계 최고를 꿈꾼다?

 엊그제 읽은 롱블랙 기사에 나온 우무라는 브랜드(현재는 우뭇가사리로 만든 푸딩을 판매하는 회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인터뷰 도중에 본인들의 기준을 국내가 아닌 세계에 맞추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푸딩을 제조하다가 마음에 차지 않는 제품이 나와 폐기를 해야 할 때도 그들은 '조금이라도 기준에 못 미치는 제품을 팔 수가 없는데, 이유는 '본인들이 세계적인 브랜드를 목표로 하고 있고, 혹여라도 이 제품으로 인해 안 좋은 경험을 한 고객에게는 이게 그 브랜드 경험의 전부이기에 조금이라도 아쉬운 제품은 전량 폐기함을 원칙'으로 삼는다고 강조했다.

 

 세계적인 브랜드, 적어도 이 제품(브랜드, 분야)에서만큼은 세계에서 손꼽을 수 있길 바란다는 마음.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시절 장래희망에 적었던 대통령이라는 세 글자보다 더 당돌하고 또 낯선 느낌으로 다가왔다. 세계적인 무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은 일상을 사는 우리의 노력과 얼마나 다른 것일까? 먹고사니즘에 허우적대며 어떻게든 쉽게 쉽게 가려고 고민하는 내게 우무 대표님들의 당찬 이야기가 꽤나 오랫동안 머물렀다.

 

마음에 들지 않는 휘낭시에

 아내가 집 근처에 새로 생긴 빵집을 다녀오는 길에 신기한 경험을 했다며 내게 이야기를 전해줬다.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빵맛이 예사롭지 않은 집이라 시간이 날 때면 들러 메인 빵부터 디저트용 까지 종종 사곤 했는데 그날따라 디저트용으로 제격이던 휘낭시에가 없더란다. 아쉬운 마음에 사장님께 "휘낭시에가 인기가 좋은가 보네요.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없네요?"라고 물었는데, 사장님께서 "아, 오늘 몇 차례 굽긴 했는데 제 마음에 들지가 않아서 버리려고 빼놓았답니다. 원하시는 빵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말씀을 하셨다고 했다. 함께 일하던 아르바이트 생이 옆에서 "제가 볼 때 잘못된 게 하나도 없었는데, 사장님이 너무 기준이 높으신 거 같아요. 저 같았으면 벌써 팔았을 텐데 굳이 판매를 안 하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쉬움과 놀라움이 섞인 표정을 짓던 아내에게 사장님은 "하품이라도 괜찮으시다면 무료로 하나 드리겠습니다. 집에 가셔서 드셔요."라고 다른 빵과 함께 휘낭시에를 포장해 주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아내와 나는 그 문제의 빵을 먹었다. 나름 빵 좀 먹어봤다는 우리가 먹기에도 전혀 손색이 없었던, 이전에 먹었던 것과도 큰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고 해도 무방했다. (아내 말로는 예전보다 약간 더 구워져서 겉이 아주 조금 바삭했던 것 말고는 없었다고 했다.)

 

기준이 다르다.

 기준에 못 미치는 제품이라도 이대로 버리긴 아까우니, 딱 한 번만 눈 감고 팔아도 되지 않았을까? 어쩌면 그 디저트 빵을 먹었던 우리처럼 대부분이 기존 제품과 지금의 것이 다름을 모르지 않았을까? 그들은 왜 그렇게 쉬운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우무와 동네 빵집 사장님 모두 기준이 달랐다. 우리 같은 범인이 생각하는 그 얄팍한 기준으로는 절대 오랫동안 사랑받는 존재가 될 수 없음을 그들은 알았던 걸까? 그렇게 하나 둘 초심을 잃고 굳건히 세웠던 기준들을 낮춰 가다 보면 그저 그런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될 수 있음을 그들은 알았던 걸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도 정확히 적용된다. 인생에 배신당하지 않으려면 나만의 굳건한 기준을 세우고, 조금씩 조금씩 그 기준점을 높여갈 수 있어야 한다. 설령 지금의 이 노력이 우릴 내일 당장 정상으로 이끌어 주진 않는다 할 지라도, 나의 이러한 노력을 아무도 몰라준다 할 지라도 적어도 나와 하늘, 두 사람은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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