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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션

감각을 기르는 방법, 퀸즈 갬빗을 보고.

by Bookbybooks 2022.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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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언젠가부터 '절약'과 '검소' 등이 삶의 우선순위가 되고, 그전까지는 숨 쉬듯 함께하던 내 주변에 여러 가지 것들을 살펴보고 줄이기 시작했다. 즐겨보던 스트리밍 서비스도 잡지도 구독을 끊었고, 예쁘거나 호기심에 구매하던 쇼핑몰도 앱 자체를 지워버렸다. 결론적으로 나아진 내 주머니 사정과 반대로 예전에 느끼던 '감각'은 다소 둔해짐을 느꼈다. 공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지만, 내가 갈고닦고픈 그 '감각'이란 내 시간과 돈, 에너지를 꾸준히 쏟아부을 때에만 살짝 그 틈새를 보여주곤 했다. 블로그를 시작하면서도 인풋에 대한 고민을 계속 이어오는 와중에 멈췄던 소비 중 넷플릭스를 다시 키고 밀린 영상들을 하나 둘 넘겨보기 시작했다. 출퇴근길과 자기 전에 긴 호흡으로 볼 수 있는 콘텐츠로 다큐와 드라마가 있었고 '퀸즈 갬빗'이라는 작품을 일주일간 감상했다.

 

여성 체스 천재의 성공 이야기를 그린 픽션 드라마

 

 퀀즈 갬빗의 주인공, 엘리자베스(베스 하먼)는 부모의 이혼으로 어머니와 지내다 불의의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고아원으로 가게 된다. 자기처럼 부모를 잃고 버려진 이들과 함께 지내며 그녀는 낯섦과 외로움으로 점점 겉돌게 된다. 당시 주 정부에서는 아이들에게 비타민과 함께 안정제를 주었는데, 그녀 역시 이에 점점 중독되어 간다. 더 이상 삶의 이유를 찾지 못한다고 느낄 즈음, 건물 관리인 샤이벨에게 체스를 배우게 되고, 그녀는 본인이 체스에 대한 대단한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고 여기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이후 어느 한 가정에 입양된 그녀는 남성들이 지배하던 체스 세계에 여성 참가자로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녀의 본능적이고 공격적인 대국 스타일로, 많은 승부를 이겨가지만 그만큼 지쳐가는 몸과 마음을 달래기 위해 더 많은 약물과 술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다 만난 소련의 최정상 고수 '보르고프' 에게 중요한 승부처마다 패하게 되면서 그녀는 절망감과 패배감으로 체스를 포기하고 스스로를 내려놓으려 하는데, 주변 동료들과 지인들의 변함없는 응원과 재정적 도움을 통해 오랜 습관이었던 약물과 음주를 떨쳐내고 온전한 정신으로 마침내 소련에서 보르고프를 이기며 정상에 서게 된다.

 

감각은 후천적으로 기를 수 있나?

 

 픽션이긴 하지만 이 드라마 속 주인공의 활약을 지켜보며, 그녀의 놀라운 체스 실력은 선천적인 건지, 후천적인 건지에 대한 질문이 맴돌았다. 감각은 과연 타고나는 것이고, 절대 후천적으로 배워 누군가를 앞설 순 없는 것일까? 후천적 감각 습득이 가능하다고 기술한 미즈노 마나부의 '센스의 재발견'을 보면, '센스(감각) 좋음'이란 수치화할 수 없는 사실과 현상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고 최적화하는 능력이다.'라고 말한다. 기술의 발전이 정점에 다다르면 다다를수록 결국 승부를 결정짓는 건 감각(센스)이며, 이를 위해 우리는 감각을 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언급한다. 또한 센스는 관련된 지식을 쌓으면 쌓을수록 점점 더 좋아질 수 있으며, 센스에 대한 감각(정밀도)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인풋을 살피고 꾸준히 업데이트해 나가야 함을 역설한다. 

 작중에서 베스는 본인이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남들과 나는 다르다는 느낌을 가진 정도였으나 샤이벨이란 체스 스승을 만나 기본기부터 실제 대국까지 진행하면서 자신의 재능이 체스를 통해 발현됨을 체험해 나간다. 고아원에서도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선생님을 통한 일반 수업이 이뤄졌고, 성가대와 같은 예체능 과정도 진행됨을 볼 수 있다. 다양한 인풋에 본인을 노출해 놓고 스스로 여러 가지 경험 중 제일 관심이 가고 잘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에 에너지를 쏟는 과정이야 말로 본인만의 감각을 키우는 데 있어 제일 중요한 과정이라 생각된다. 그 재능이 제대로 발현되고 세상에 쓰임이 있는지 확인받기 위해선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 배우고, 그 과정 속에 나의 습관과 성향 등을 지적받고 이를 좋은 방향으로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 또한 감각의 숙련에 있어 중요한 과정이다. 

 

의도된 그녀만의 수련

 

 어느 정도 지나고 보면 누구나 다 본연의 색깔을 가지고 있다. 색깔의 진함과 옅음에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세상에 본인의 색깔을 여실히 보이며 살아가진 않는다. 술 한잔을 기울이며 예전의 전성기 시절을 그리워하며 무채색 현실을 아쉬워하는 이도 있는 반면, 봄날 한껏 만개한 꽃처럼 본인의 스타일을 과시하는 이들도 있다. 감각의 발현 시점은 개인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어린 시절에 빛이 날 수 있고, 누군가는 불혹 이후에 그런 순간이 찾아올 수 있다. 우리는 발현 시점보다 이후의 지속성에 더 관심을 가지고 바라봐야 한다. 잠시 피고 지는 꽃과 같은 삶이 아니라 올해도 내년도, 내후년에도 꾸준히 살아있을 수 있는 생명력을 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내 감각에 대한 의도적인 수련이 필요한데, 실제 선생님을 통해서 진행할 수도 책을 통해 진행할 수도 있다.

 극 중엘리자베스 역시 체스를 처음 알게 된 이후 기본기부터 차근차근 끈질기게 배워 간다. 틈이 날 때면 천장을 보고 그간 진행했던 대국을 돌아본다던지, 체스 대국 역사라던가, 최신 기보가 적힌 책과 보고서 등을 읽으며 관련 트렌드를 쫓기 위해 노력했고, 실전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전국 대회에도 지속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수련의 강도적인 측면에서도 처음엔 본인이 바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에서 시작하여, 점차로 난이도를 올려가는 방향을 택해야 한다. 각자 과제를 수행함에 있어 속도차가 존재하기에 난이도의 높낮이엔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적어도 현재 본인 수준에서 어느 정도 애를 쓰고 시간을 투입했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유지해야 함을 기억하자. 너무 낮은 수준의 과제를 지속한다던가, 엄두조차 못 낼 정도의 난이도를 맞닥뜨리게 되면 해당 과제 자체에 관심을 잃을 수도 있다.

 

커뮤니티의 존재

 

 누구나 살면서 불안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지독한 고독의 순간일 수도 있고, 모든 걸 잃은 듯한 패배감을 느끼거나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력한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그럴 때 우린 슬럼프에 빠지게 되며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몸이 잘 따라주지 않는 막연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알고 있지만 하기 싫거나, 방법조차 모를 정도로 막막해지는 그런 순간을 이겨내기 위해선 '혼자가 아닌 함께'를 기억해야 한다. 즉 커뮤니티의 존재가 필요한 것이다. 술이나 담배, 향정신성 약품 등은 그런 상황에서 일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진 몰라도 결국 상황을 개선하기보단 그저 그 순간을 잊게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면 현실은 그대로 이기에 근본적인 접근을 달리 해야 한다. 맑은 정신으로 말이다.

 나의 현 상황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고, 때론 따뜻한 위로를 때로는 불편하지만 일리 있는 충고를 해줄 수 있는 그런 이들이 속해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 이 커뮤니티에는 마음이 맞는 친구 한 명이 있을 수도 있고, 나와 비슷한 길을 걷는 불특정 다수의 여러 명일 수도 있다. 나의 성장을 본인의 일처럼 보고 듣고, 응원해주고, 나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본인에게 많은 안정감과 에너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소련의 체스 최강자 '보르고프'와의 어드전(당일 경기가 끝나지 않고 잠시 휴지기를 가진 후 다시 이어지는 대국의 형태)에 돌입한 베스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한 마음에 끊었던 신경 안정제를 찾을 정도가 된다. 그런 그녀에게 국제 전화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고, 수화기 속에선 그동안 그녀와 함께 오랫동안 체스를 두며 승부를 나눴던 많은 동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를 위해 밤을 새워 해당 대국을 연구했고 수 백가지의 경우의 수에 대해 정리해서 그녀에게 들려준다. 그녀는 동료들의 응원과 도움으로 다시 한번 정신을 차리고 연장전에 돌입하게 되고 결국 승리를 거머쥔다. 그녀를 응원하는 커뮤니티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다시 승리의 문턱에서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모든 이는 창작자가 되어야 한다.

 

 [그냥 하지 말라]를 저술한 바이브 컴퍼니의 송길영 부사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결국 우리는 둘 중 하나의 영토에 설 수밖에 없다고 언급한다. 그 두 가지는 바로 콘텐츠 크리에이터와 플랫폼 제공자다. 개인이 아무리 대단한 성취를 할 수 있다 할지라도 구글과 페이스북, 네이버를 뛰어넘는 플랫폼을 제공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개인은 콘텐츠 창작으로 갈 수 밖에 없는데, 창작이란 내 감각을 파는 행위이며, 내 감각의 신선함에 따라 콘텐츠 크리에이터로서 수명이 결정될 수 있는 결론에 다다른다. 개인 사업자이든 직장에 속한 사람이든, 뭐든 간에 우리는 자신만의 감각을 키우고 다듬어 가야 한다. 불확실하고 변화무쌍한 이 시대를 잘 해쳐나가기 위해선, 어설프더라도 나만의 감각을 만들어야 하며, 내 시간과 에너지를 적절하게 투입해 점점 더 날카롭게 벼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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