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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지 말라, 스크랩도.

by Bookbybooks 2022.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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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중독자

 

 고백하자면, 나는 스크랩 중독자였다. 특히 스마트폰에 설치한 생산성 앱의 편리한 스크랩 기능을 알면서 내 중독 증상은 더더욱 심해졌다. 더 빠른 스크랩 모션과 보관을 위해 늘 다양한 생산성 앱을 찾아댔고, 처음엔 에버노트에서 드롭박스로, 그리고 원노트를 넘어 이젠 노션에 내 스크랩 흔적들을 쌓기 시작했다.

 

 잡지나 종이 신문 같은 지류들도 가능하면 직접 자르고 붙여 상자에 보관하곤 했다. 자기 계발서에 탐닉했을 무렵, 적잖은 저자들이 본인의 공부법과 스크랩 노하우 등을 이야기하는 챕터를 찾곤 했는데, 나는 이를 게걸스럽게 찾으며 필사와 사진 찍기 등으로 기어이 스크랩 박스에 넣어야 직성이 풀렸다.

 

 SNS에 많은 좋아요와 공유가 된 포스팅을 볼 때면 누가 훔쳐라고 갈 거 같은 마음에, 읽기도 전에 스크린샷부터 찍기 바빴고, 그 글을 채 다 읽기도 전에 그다음 글 타래를 찾아 분주히 엄지 손가락을 움직이곤 했다. 내가 만들어 놓은 스크랩 폴더에 새롭게 라인 한 줄이 생길 때면 왠지 모를 뿌듯함이 느껴졌고, 페이지가 넘어갈 정도로 많은 자료가 쌓이는 걸 보며 묘한 안정감마저 들었다.

 

스크랩(자료 모음)이 스크랩(폐기물)이 되는 마법

 

 그런데 말이다, 점점 불러져만 가는 스크랩 박스와 다르게 내 식견은 그리 뚱뚱해지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서운한 마음을 다잡으려 나의 그 뿌듯한 스크랩 박스에 한 번씩 들어 가볼 참이면, 당시에 내가 왜 이 자료를 모았는지 이 글은 내게 어떤 느낌, 영감을 준 것인지를 새삼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 자료가 아예 처음 보는 느낌은 또 아니고, 일종의 친숙한 낯설음이랄까.

 

 아까운 마음에 눈 앞에 보이는 링크를 하나 둘 누르다 보면 원 게시물이 이미 없어진 경우도 있고, 스크린숏으로 찍은 부분 사진은 누가 언제 말한 것인지 단서를 찾을 수 없는 게 부지기수였다. 겨우 정상적인 게시물을 만나 다시 읽다 보면, 그때의 그 감흥도 느껴지지 않고 시간만 억지로 쓰는 것 같아 중간 즈음 뒤로 가기 버튼을 누르고 폴더를 닫고 만다. 얼마간 자료를 삭제해보기도 했으나, '지금 이걸 버리면 다신 이런 자료를 못 보지 않을까?', '혹시 조금 더 두고 보면 좋은 글감이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는 내가 누군가로 부터 전해 들었던 '좋은 글은 좋은 인풋에서 온다'는 말을 곡해한 것에서 시작된 문제라고 본다. 좋은 식자재들만 잔뜩 모아놓으면 어떻게든 좋은 요리가 나올 수'도' 있을 거라는 게으른 마음이 문제였다. 스크랩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스치듯 든 생각들을 짧게라도 메모로 함께 남겨 두었다면 어땠을까? 그저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과도하게 집어넣은 음식들이 내 몸에 불필요한 지방을 끼게 하듯, 정리되지 않은 채 쌓기만 하는 자료들은 내게 불필요한 부담과 불안만을 더할 뿐이더라.

 

좋은 재료를 제대로 먹어야 한다, 몸도 마음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다보면 운동만큼이나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몸을 키우기 위해선 닭가슴살과 오트밀, 녹황색 채소와 같은 깨끗한 음식을 몸무게에 맞춘 정량만큼 자주 나눠 먹어야 줘야 한다. 전체에서 운동이 차지하는 비율이 30% 라면 음식이 70%라고 할 정도로 내가 무엇을 먹느냐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앞서는 것이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처럼 우리가 수집하는 정보 역시 좋은 정보를 적당량만큼 받아들이는 프로세스를 만들어야 한다. 의도된 축적과 꾸준한 정리 과정을 통해 글감을 정리해두어야 이를 이용해 쓸 만한 아웃풋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적절한 과정을 가져가지 못한다면 아무리 빛나는 기사도, 책도 결국 휴지통에 버려질 쓰레기에 불과한 것이다.

 

이제 나는 스크랩할 무언가를 발견하면 의도적으로 속도를 늦춘다. 정말 해야 하는 건지, 출처는 어디인지, 왜 하게 되었는지 등을 짧게라도 남기려 노력한다. 그리고 정기적으로 스크랩 폴더를 열고, 제대로 정리되지 못한 자료나 이미 효용을 다한 자료가 발견되면 그 즉시 바로바로 삭제한다. 혹 아쉽단 생각이 들더라도 '다음에 다시 이런 글을 만난다면, 그땐 꼭 메모와 함께 다시 넣어두자. 지금은 버리고.'라는 생각을 더하며 휴지통으로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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